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미 카터 (문단 편집) == 여담 == [[파일:지미 카터 태양광 발전소.webp|width=700px]] * 백악관 지붕 위의 태양광 발전소는 지미 카터 행정부를 상징하는 요소이다. 지미 카터는 환경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깨끗한 미래 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에 많은 투자를 약속했고 자신도 태양광 전자판을 백악관 웨스트윙 지붕 위에 설치했다. [[오일쇼크]]로 전기 값이 확 오른 것 때문에 어느정도 현실적인 선택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일쇼크가 안정되고 기름값이 내려가자 [[로널드 레이건]]은 태양광 발전소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지 철거해버렸다. 이 일화는 영화 [[바이스]]에서 지미 카터 행정부의 흥망성쇠를 묘사할때 그대로 사용된다. * 저술활동을 상당히 즐겨, 20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다. 한국에도 몇 권의 도서가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며, 가장 최근에는 카터의 자서전이 2018년 번역되어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20029073&orderClick=LAG&Kc=|출간되었다]]. 카터는 집필한 책 가운데, 두 권을 통해 [[그래미상]]도 두 차례 수상했다. 2016년 그래미상 수상 도서가 바로 카터의 자서전이다. * [[한국어 위키백과]]의 첫 번째로 작성된 문서의 표제어이기도 하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2002년 10월에 서비스를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 지미 카터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라서 먼저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http://wayback.archive.org/web/jsp/Interstitial.jsp?seconds=5&date=1053658473000&url=http%3A%2F%2Fko.wikipedia.org%2Fwiki%2F%25EC%25A7%2580%25EB%25AF%25B8_%25EC%25B9%25B4%25ED%2584%25B0&target=http%3A%2F%2Fweb.archive.org%2Fweb%2F20030523025433%2Fko.wikipedia.org%2Fwiki%2F%25EC%25A7%2580%25EB%25AF%25B8_%25EC%25B9%25B4%25ED%2584%25B0|관련 링크]]). * 정식 퍼스트네임 본명 대신 애칭을 본명처럼 사용한 최초이자 셋뿐인 대통령이다. 제임스(James)라는 본명이 올드하게 생각했는지 대신 지미라는 애칭을 성과 합하여 '지미 카터'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심지어는 본인의 대통령 취임선서도 '''지미 카터'''라는 이름으로 했다. 당시 워런 버거 대법원장이 나, 제임스 얼 카터는이라고 선서문을 선창하자 카터가 나, '''지미''' 카터는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선거 포스터나 언론 기사 등 대외적으로 언제나 '지미 카터'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했고, 미국인들조차도 위키피디아를 찾아보지 않는다면 그의 본명이 제임스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미국인이라면 지미가 애칭이고 제임스 정도가 본명일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이를 확실하게 확인해 보고자 할 때, 제임스라는 본명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위키피디아를 찾아서 확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미 카터 이외에는 [[빌 클린턴]]이 윌리엄이라는 퍼스트 네임 대신 빌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빌 클린턴'이라는 이름을 대외적으로 사용했고, [[조 바이든]] 현 대통령도 조지프 대신 조라는 애칭을 주로 사용한다.[* 클린턴과 바이든은 취임선서도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 및 조셉 로비네트 바이든 Jr. 라는 법적 본명으로 했으며, 각료 임명장이나 사면장 등 중요 공식문서에도 각각 윌리엄 J. 클린턴 및 조셉 R. 바이든 Jr. 이라고 서명한다.] 아이젠하워의 경우 아이크라는 애칭으로 불리었지만 본인이 사용한 것이라기 보다 언론이 긴 독일어식 성 대신 붙여진 애칭이라 할 수 있으며, 이와 별도로 그가 언론이나 선거에서 대외적으로 사용한 이름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라는 본명이었다. * [[존 F. 케네디]] 이후로 계속 이어지던 해군 출신 대통령의 기록을 그가 마감했다. 이후, 후임 [[로널드 레이건]]을 건너 뛰어 [[조지 H. W. 부시]]가 현재로서는 마지막 해군 출신 대통령이 되었다. * 웹툰 [[이말년 서유기]]에 드립으로 등장했다.[* 지미(지 어미) 카터(cutter). 지 어머니를 베는 놈이라고 얘기했다.] *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를 닮았다. * 1979년 국빈으로 한국에 방한했을 때, 영부인 로잘린 여사와 딸 에이미 카터가 [[덕수궁]] 방문 도중 구두 끈이 끊어지자 맨발로 걸어다녀 한국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 자식을 유일하게 [[워싱턴 D.C.]]의 공립학교에 보낸 대통령이다. 이렇게 보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사실 자녀를 보낸 공립학교가 있던 지역이 흑인 밀집지역인데다[* 워싱턴DC는 예나 지금이나 흑인이 과반이다.] 교육 수준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거의 [[빈민가]]였다.[* 사실 미국의 대다수 공립학교(특히 중/고등학교)들은 사립학교에 비해 경쟁력이 현저하게 뒤떨어지는 편이다. 단 대학 교육은 예외로 메이저급 [[주립대학]]들은 [[아이비 리그]]로 대표되는 세계구급 사립대학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아웃풋을 자랑한다.] 공화당계는 물론 민주당계 대통령들도 자기 자식들을 값비싼 사립학교에 보냈다. [[버락 오바마]]도 두 딸을 연 3만불 가까이 수업료를 받는 사립학교에 보냈을 정도인데, 카터는 유일하게 공립학교에 보냈다. * 4년 임기를 채운 대통령 중 연방 대법관을 지명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유일한 대통령이다. 카터 이후 4년 단임으로 퇴임한 [[아버지 부시]]도 2명[* [[버락 오바마]] 시절 은퇴한 데이비드 수터, 및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클래런스 토머스]]를 지명하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3명'''[*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씩이나 지명한데다, 4년을 채 못 채우고 백악관을 떠난 카터의 전임자 [[제럴드 포드]]조차도 연방 대법관을 지명할 기회가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쉽다.[* 2010년 6월에 은퇴한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을 지명하였다.] * '''[[모타운]]을 설립한''' [[베리 골디]]와 육촌이다.[* 베리 골디의 할아버지 베리 골디 1세와 지미 카터의 외할아버지가 이복형제이다. 정확히는 증조할아버지가 소유 흑인 노예랑 낳은 자식이 베리 골디 1세, 본 부인과 낳은 자식이 지미 카터 외할아버지. 때문인지 몰라도 베리 골디도 상당히 장수하고 있는 편이다.] *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 지미 카터가 작게 보인 것이 화제가 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2373885?sid=104|#]] * 애틀란타를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Jimmy Carter Street가 있다. 그의 조지아 주지사 경력이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 카터 이후 당선된 대통령들은 모두 키가 180cm를 넘는다. 당장에 20세기에 집권한 대통령들 중 180cm를 넘지 않는 사람은 카터(178cm) 포함 5명뿐이다.[* 다른 4명은 [[시어도어 루스벨트]](178cm),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179cm), [[해리 S 트루먼]](172cm), [[캘빈 쿨리지]](178cm). 이중 트루먼이 유독 작은 편이다. 다만 트루먼도 당시 미국인 전체 평균에 비해서는 많이 작지 않은 쪽이다. 다른 대통령들이 매우 큰 키였던 것. 큰 키가 정치활동에 유리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 [[1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난 첫 대통령이다.[* 전전전전임자였던 케네디 대통령은 1917년생으로 1차 세계대전 도중에 태어났으며 존슨,닉슨,포드는 1차 세계대전 이전에 태어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